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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의 기회를 버린 일본(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 정복-3)

그랜드슬램83 2020. 3. 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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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역사반성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역사반성과 사죄를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일본은 세차례의 역사반성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잡지 않았습니다.

 첫번째는 도쿄재판으로 패전과 동시에 일본은 포츠담선언을 수락했습니다. 이 선언에서 일본은 전범 재판을 받고 배상을 해야 했지요. 하지만 일본의 A급 전범들이 재판정에 섰던 것은 식민지 통치에 대한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해당 재판에서는 연합국에 대한 침략의 죄만 일본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식민지 문제가 거론되지 않은 이유는 영국이나 미국이 전후에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번째 한국전쟁 발발 1950년 이후 급격히 진행된 일본의 독립과정에서 찾아왔습니다. 1951년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맺어 진 해로 당시 대통령은 해당 조약에 대해 '연합국의 일원으로 한국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일본 수상의 반대로 강화조약 체결의 조건으로 한국을 배제 하려고 애썻고, 이에 결국 한국은 참여하지 못한 채 일본과 연합국만의 강화조약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한국과 대만이 이 조약에서 배제 되었는데 일본은 빨리 독립을 하길 원했으며, 만일 강화조약에서 이들 식민지 국가들이 참여하게 되면 빠른 시일에 합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이들을 배제한 채 연합국과 단독 강화를 맺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 기회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때입니다. 이때 한국은 국가보상/배상 및 식민지 지배 사죄를 요구했지만 일본은 어느 것하나 끝까지 인정하지 않은 채 '경제협력방식'으로만 경제적 이권만을 가지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인도네시아나 대만과도 조약을 맺었지만, 식민 지배를 사죄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모든 청구권을 포기시켰지요. 결론적으로 일본은 현재까지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도 식민지 문제와 관련하여 사죄를 하지 않은 채 '경제협력 방식'으로 일관해 온 것입니다.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국내도서
저자 : 이영채,한홍구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20.01.15
상세보기

미국의 빅픽쳐와 그 후 한국과 일본관계(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 정복-2)

전후 협정과 일본의 역사피로감 프레임 인수분해(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 정복-1)

본 내용은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2020)을 기반으로 작성 하였으며, 지은이는 이영채/한홍구 교수입니다*

이영채

-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 일본 게이오대 대학원 박사

- 동아시아국제정치, 한일 및 북일 관계 연구자

한홍구

-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 졸업

- 미국 워싱턴대 한국현대사 전공 박사

-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책임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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